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 박노해

육아 2020. 3. 28. 05:53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 박노해

 

 

무기 감옥에서 살아 나올 때

이번 생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을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 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 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박노해 시집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중에서

 

 

'엄마 마음, 태교'라는 책에서 본 시다.

이 책에서는 

'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라는 구절부터 인용이 되어있다.

발췌라고 되어 있길래 이 시의 전문은 어떨까 하며 인터넷을 찾았다.

그 구절 위에 조금 무거운 내용의 길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감옥, 혁명가 이런 단어들이 나와서 박노해라는 인물에 대해 찾아봤다.

그는 1980년대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시로 등단을 했으며

이후 노동자 연합을 세우고 노동운동을 했다. 1991년에는 무기징역으로 수감되었다. 

노동운동가로 이런 이력을 가진 시인이었다니... 심지어

박노해라는 이름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문구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필명이라고 한다.

지금은 사진가로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를 키워감에 있어 이 세 가지를 지켜갈 수 있다면 그 무엇이 더 필요할까.

셋째에서 말하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것...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

이 것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배움이 필요하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잘 살고 똑바로 살기 이전에 삶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온전히 자신만의 삶에 대한 기준이 생긴다.

그 기준이 있어야 그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 함으로써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며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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