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면 - 브레네 브라운 #3.

chapter. 7 내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되길 바라는가?

#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육아에 관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며 세상에 어떻게 참여하느냐를 봐야 한다. ‘네가 부족해서 그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대담하게 세상에 뛰어들라고 가르치고 싶다면, 자기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부모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내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지금의 나와 같은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 명쾌한 육아 지침들은 유혹적인 동시에 위험하다. 내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확실성이 종종 독단과 편협함과 비판으로 이어지기 때문.

# 역설적인 얘기지만 육아란 본래 수치심과 비판의 지뢰밭이다. 부모는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불확실성과 자기의심을 헤치며 나아간다. 스스로의 결정에 자신이 있을 때 우리는 독선적인 비판을 쉽게 하지 않는다.

# 내가 선택한 것에 약간의 회의를 품고 있다면 남을 향한 독선적 비판이 순간순간 고개를 쳐들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내면의 두려움 때문에 적어도 내가 당신보다 낫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 우리의 자존감, 그러니까 지금 우리 자신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은 가정에서 처음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어릴 때 자기 자신에 관해 무엇을 배웠으며 세상에 참여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는가가 우리 인생의 경로를 결정한다. 자존감을 되찾으려고 분투하느라 삶의 상당 부분을 흘려보낼 수도 있고,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희망과 용기와 회복탄력성을 얻어 더욱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 사랑과 소속감과 자존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했던 경험.

#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하는 말보다 우리의 인격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모습을 우리 자신이 보여줘야 한다.”
— 조셉 칠턴 피어스

#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부모가 돼야 한다.
• 자신에게 없는 것을 아이들에게 줄 수는 없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하고 학습하는 여정을 아이들과 공유하자.

• 우리가 걸치고 있는 갑옷을 의식하자. 갑옷을 벗고 취약해지고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자.

• 아이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자.

• 부족하다는 관점보다는 충분하다는 관점에서 부모 노릇을 하자.

• 간극을 의식하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가치들을 직접 실천하자.

• 대담하게 세상에 뛰어들자. 과거의 우리보다 더 대담해지자.

# 우리 삶에 의미와 목표를 부여하는 두 가지, 공감과 유대는 직접 경험해야만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최초로 공감과 유대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 온 마음을 다하는 육아란 부모가 낑낑대며 인생의 지혜를 모조리 습득한 다음에 그것을 통째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탐험하며 배워나가는 것이다.

#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 사실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자기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그 길을 걸으며 시련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수치심은 전제조건을 사랑한다.

# 완벽주의는 전제조건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 완벽주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보다 남들의 생각을 더 귀중하게 여기라고 가르친다.

# 우리는 아이들의 행동을 비판하고 흥분하고 화를 내면서 부모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맨 처음 보여주는 얼굴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줄 수도 있고 자존감의 전제조건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아이들이 방에 들어올 때 비판부터 하고 싶지 않다. 밝은 표정을 짓고 싶다!

#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육아 성향을 보고 아이들이 수치심 또는 죄책감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예측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부모는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지, 자신의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다.

# ‘넌 나쁜 아이야’와 ‘네가 나쁜 행동을 했어’의 차이는 크다. 단순히 말의 뜻이 다른 게 아니다. 수치심은 우리가 뭔가를 해낼 수 있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잠식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수치를 심어주고 낙인을 찍는 순간, 아이들이 더 성장할 기회와 새로운 행동을 연습할 기회를 빼앗는 셈이다.

# 아이들에게 수치심 대화를 줄이고 죄책감 대화를 늘려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훈육하며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수치심과 죄책감의 개념을 아이들에게도 설명해줘야 한다.

# 부모가 성의 있게 접근하면 아이들도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이 네다섯 살이 되면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를 설명해주자. 그리고 설령 그들이 나쁜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가 그들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 “선생님. 옷이 엉망이 됐어요. 근데 저는 엉망이 된 것이 아니에요.”

# 우리가 수치심에 젖을 때마다 작아지는 느낌을 받거나 다시 아이가 된 것 같은 이유는 우리의 뇌에 어린 시절의 수치심 경험이 트라우마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사람의 뇌느느 타인에게 거부당한 경험이나 수치심 경험을 육체적 고통과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한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수치심은 우리의 성격과 자아상과 자존감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 부모인 우리에게 수치심에 관한 지식이 생기면 ‘아, 내가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심어줬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가 수치심을 육아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아이들은 외부세계에서 수치심을 경험할 것이다. 그런 순간은 언젠가 찾아온다. 현대사회의 잔인한 문화 속에는 공개적인 질책과 놀림과 욕설이 널리 퍼져 있으니까. 여기에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그런 경험들은 우리 아이들의 삶에 지대하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아이들이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그리고 부모가 아이들의 감정과 경험에 관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면 아이들은 교사·코치·성직자·육아도우미·조부모, 그리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수치심을 느꼈던 일을 부모에게 털어놓을 확률이 높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마치 가위로 사진을 오려내는 것처럼,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수치심을 잘라낼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 우리의 임무는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키워주고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수치심이란 무엇이며 수치심이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관해 대화를 나눠야 한다.

# 사실 부모가 자기 자신보다 수치심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들을 키워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엘렌에게 네 몸을 사랑하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내 몸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엘렌이 관찰한다는 사실이다.

# ‘표준화’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강력한 수치심 회복 수단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표준화란 아이들에게 “넌 혼자가 아냐. 우리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단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표준화의 원칙은 인간관계 고민·신체의 변화·수치심 경험·소외감, 그리고 용감해지고 싶지만 두려운 상황에 모두 적용된다. 부모가 “나도 그랬단다!”라고 말해주는 순간, 또는 아이의 어려움과 연관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순간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신성한 뭔가가 생겨난다.

# 자존감을 잘 유지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다. 부족한 느낌이 아닌 자존감을 토대로 세상에 참여하면 굳이 남을 비난하고 공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 내가 부모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참여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 열린 자세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는가?

# 다른 부모들이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들이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우리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대담하게 뛰어들기’란 우리의 길을 찾아나가면서 다른 사람의 길도 존중하는 것이다.

# 연구를 하면서 나는 소속과 적응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사실 적응은 소속감을 못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장벽이다. 적응이란 상황을 분석해보고 자신을 그 집단에서 승인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반면 소속은 정체성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소속은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 • 소속은 내가 원하는 곳에 있고 그곳에서도 나를 원하는 것이다. 적응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곳에 있긴 하지만, 그곳에서는 내가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 소속이란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 것이다. 적응이란 남들과 똑같아졌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이다.

• 어딘가에 소속될 때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어딘가에 적응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져야 한다.

#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싶다면 아이들이 가족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그 소속에는 조건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 그 일이 어려운 것은 우리 자신도 소속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 곁에 머무르면서 함께 소속감을 키워나가야 한다.
(소속감을 가슴 깊이 경험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공감하는 것이 제일이다!)

# 어둠과 공감에 관한 페마 초드론Pema Chodron(미국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티베트불교 승려-옮긴이)의 말이었다.
‘공감은 치료자와 부상자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대등한 관계에서 생겨난다. 우리 자신의 불행을 잘 알아야 타인의 불행에 함께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니는 공통성을 인식할 때 공감은 진짜가 된다.’

# 우리는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대규모 컨퍼런스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집단에 소속돼 있음을 느꼈다. 가장 중요한 곳이란 바로 가정이다. 우리의 목표는 완벽한 육아가 아니다. 최고의 선물, 최고의 배움은 우리가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간극을 의식하게 되는 그 불완전한 순간들에 존재한다.

#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에 솔직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경험에 솔직해질 수 있는가?

# 참여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다. 참여란 아이들과 마주 앉아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의 관심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참여하는 부모는 육아 논쟁의 양편에 다 있다.

참여하는 부모들의 공통점은 가치를 실천에 옮긴다는 것.

참여에는 당연히 희생이 따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약속한 것 아닌가?

# 나는 우리가 아무리 불완전해도, 아무리 취약해도, 아무리 엉망이라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신성한 뭔가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 자기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고 취약성을 못 견디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아니다. 우리가 불확실성과 위험과 감정의 노출을 못 견디는 것이다.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 우리 아이들이 아주 크고 높은 희망을 키우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힘들어할 기회를 줘야 한다. 물론 사랑과 소속감도 같이 줘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희망찬 마음을 가져준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내가 했던 연구에 따르면 시련·끈기·근성과 관련한 경험은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의 중요한 특징이다.

# 희망은 사고의 방식 또는 인지의 과정이다. 감정이 우리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면 희망은 목표·경로 사고·주도적 사고로 이뤄지는 사고의 과정이다. 스나이더는 이 세 가지를 희망의 3요소라 부른다.

• 목표 — 현실적인 목표를 세울 능력이 있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알아.)

• 경로 — 사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유연성을 견지하면서 대안적인 경로를 개척할 수 있는 능력도 여기에 포함된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아. 나는 끈기 있는 사람이어서 실망해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어.)

• 주도적 사고 — 자신을 신뢰한다. (난 해낼 수 있어!)

# 결론적으로 희망이란 목표를 세우고, 인내와 끈기를 발휘해 그 목표를 계속 추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플랜B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희망이 곧 플랜B다.

# ‘희망은 학습하는 것이다.’라는 구절! 이 구절 덕택에 나는 나의 취약성을 끌어안고 한 발 뒤로 물러나 아이들이 자기 일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놓아둘 수 있었다. 스나이더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희망을 배운다. 아이들이 희망적 사고방식을 배우려면 적절한 경계선과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자신을 지지해주는 관계가 필요하다. 희망을 많이 가진 아이들은 시련을 경험한 적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고생할 기회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믿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이들을 희망에 찬 사람, 그리고 취약해질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한 발 뒤로 물러나자. 아이들이 스스로 실망을 경험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주장을 펼치는 방법을 배우고, 실패할 기회를 얻도록 해주자.

# 나는 오랫동안 내가 잘하지 않는 일에 도전하지 않고 살았는데, 그런 선택을 계속하다 보니 용감해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잊어버릴 지경이라고.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하고 중요한 일이 그냥 경기장에 나가는 것일 때도 있단다.”

# 대담하게 뛰어들기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용기를 낸다는 것이다. 부족한 느낌과 수치심이 우리를 지배하고 두려움이 제2의 본성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취약해진다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다. 마음가면을 벗고 우리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상처를 입을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대담하게 뛰어들기’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삶의 바깥쪽에 서서 삶을 들여다보기만 하면서, 진짜 나를 보여줄 용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궁금해하는 것만큼 불편하고 위험하고 상처가 되는 일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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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음을 다하며 사는’ 부모들의 선언


가장 먼저, 너희는 사랑받고 있으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란다.

너희는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걸 배우게 되겠지. 내가 너희를 어떻게 대하느냐,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고 너희는 사랑을 배우게 될 거야.

나는 너희가 튼튼한 자존감을 토대로 세상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내가 나 자신에게 공감하고 나 자신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너희는 너희가 사랑받고 어딘가에 속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용감해지는 연습을 할 거란다. 용기란 어딘가에 참석하고, 우리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취약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거니까. 우리가 고생했던 이야기와 용기를 냈던 이야기를 너희에게도 들려줄게. 우리 집에는 시련과 용기를 위한 공간이 언제나 마련돼 있어.

우리는 너희에게 공감을 가르치기 전에 우리 자신에 대한 공감을 먼저 실천할 거야. 그다음 순서는 서로에게 공감하는 것이겠지. 우리는 경계선을 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며 노력과 희망과 인내를 귀하게 여길 거야. 온 가족이 휴식과 놀이를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할 거란다.

내가 실수를 저지르고 그것을 만회하는 모습, 내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요청하고 내 기분을 말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희는 책임과 존중을 배울 거야.

나는 너희가 기쁨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 그래서 우리가 함께 고마워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가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약해지는 법을 함께 배워나갔으면 해.

불확실성과 ‘부족한 느낌’이 너를 괴롭힐 때면 우리 가족의 일상생활에 깃든 영혼이 너를 도와줄 거야.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두려워하고 함께 슬퍼할 거야. 나는 너희의 고통을 내게로 가져오고 싶어지겠지만 그렇게 하진 않을 거야. 대신 너희와 마주 앉아 고통을 느끼는 방법을 알려줄게.

우리는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뭔가를 창조할 거란다. 우리는 늘 서로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권리를 가지지. 어떤 일이 있어도 너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니까.

너희가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을 위한 여정을 시작할 때 내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나 자신이 온 마음을 다하여 살고 사랑하면서 대담하게 도전하는 거겠지.

나는 너희에게 그 무엇도 완벽하게 가르치지 않을 거란다. 나는 완벽하게 사랑하지도, 완벽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을 거야. 그래도 너희에게 나를 보여줄 게 그리고 너를 본다는 것이 내게는 언제든 신성한 선물이 될 거야. 진실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너를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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