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아빠가 되는 시간' - 김신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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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간의 잘못된 생각, 태도, 성격 등을 뜯어고쳐야 한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만큼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매번 육아 열차가 탈선하지 않도록 절치부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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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면 마치 어릴 적 내가 채워지는 것 같다. 아들에게 잘해줄수록 내가 보상받는 기분이다. 아물지 못한 채 그대로 깊숙이 숨어 있던 어릴 적 상처들을 이제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녀석과 함께 있다 보면 신기하게도 치유의 손이 그곳까지 미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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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베풀면 그 이상으로 돌려받게 되는데, 육아만큼 보상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것도 없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키움으로써 나 스스로를 어른으로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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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정작 보고 싶은 건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젊은 시절 엄마 아빠의 모습일지 모른다. 게다가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면 간절하게 그리운 얼굴일 거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만 찍지 말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다른 가족들도 함께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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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들은 영원하고 우리는 그런 영원히 존재하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걸 뒤늦게 되살리는 게 어려워 후회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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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영상에는 맥락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 덕분에 재미가 있고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 맥락이란 카메라가 담고 있는 피사체에 집중만 한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다. 어디서, 누구와 함께였는지도 찍어야 그날의 순간이 더 의미 있게 남는다. 시간, 장소, 관계 등 모든 게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동영상을 찍을 때는 아이들만 찍지 말아야 한다.



파산이나 이혼, 투병 등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상처를 자주 입는다는 점이다. 나는 그 중심에 부모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가 지나가면 일상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한다. 따뜻한 아이들의 마음은 불길이 솟기도 하고 얼음처럼 식어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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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음을 괴롭게 하는 건 어려운 일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내뿜는 나쁜 감정들이다. 화는 그중에 으뜸이다. 특히 남자들은 오랜 인내와 노력에도 한 번의 분노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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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멈춰서야 한다. 그리고 다른 계획을 짜야 한다. 내 여건이 안 되면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황이 변하면 그에 맞게 실현 가능한 계획을 다시 제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청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추진력, 신뢰, 책임감 이런 것이 강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회사처럼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아이는 원안대로 맞춰줘야 하는 직장 상사도 아니고, 내 뜻을 어김없이 실행해야 하는 부하 직원도 아니다. 얼마든지 조정할 공간이 있는데 아빠들은 그걸 잘 인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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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이 아니다. 어른과 똑같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리고 아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내가 보기에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때도 그 일이 나름 중요한 일이라고 인정해줘야 한다. 내 기준으로 중요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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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는 순간마다 화내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다른 상황을 만들어보고, 아이들을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꼭 화낼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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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운 게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제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알고 있어도 실행하기가 어렵다. 내 멘탈이 무너지지 않도록 좀 더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육아 기술을 쓸 수 있는 여유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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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는 아이들이 정말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육아 원칙이다. 그 자리에 화는 끼어들 곳이 없다. 그리고 먼 훗날 나도 아이를 키우며 행복했다고 회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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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길로 가라고 얘기해주는 아빠가 아니라 실패해서 빈손으로 되돌아오는 길을 함께 걸어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 방황을 많이 한 아빠일수록 그 불안과 외로움을 더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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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늘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동시에 신비롭기도 하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인생은 이루는 게 아니라 여행하는 것이라고. 그러려면 불확실성에 몸을 좀 내던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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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주는 임무

우리는 아이들을 얼마나 기다려줄 수 있을까? 아마 아빠의 일은 기다려주는 것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굳이 기다릴 시간을 가늠해볼 필요도 없다. 기다리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할 수 일은 없고, 결국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할 일이다. 보통 뭔가를 하려다 일을 그르친다. 아빠는 그저 아이들에게 모두 다 괜찮을 거라고 얘기해주는 역할만 맡으면 된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빠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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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처진다는 것, 그건 허상일지 모른다. 반면 앞서간다는 건 요즘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을 함께하며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조금 뒤처져봐야 한다. 그래야 다시 앞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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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박해지면 우선순위가 명확히 눈에 들어온다. 일을 담백하게 하게 된다. 요란을 떨지 않고 묵묵하게 일하는 자세를 익힐 수 있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불같은 열정도 아니다. 꾸준함, 지루함과 친해지는 것이다. 그것을 배우는 데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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