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경제학 - 문소영 #1

 





# 16세기에 이르자 상업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자금에 대한 수요는 자꾸 증가하는데, 돈줄은 유대인이 틀어쥔 상황이 종종 나타나게 됐다. 『베니스의 상인』은 이런 상황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 중상주의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천연자원과 노동력을 헐값에 제공해야 했던 식민지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서민들 또한 중상주의의 폐해를 겪어야 했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위해 낮은 임금을 강요받았고, 반면에 물건을 살 때는 경쟁이 없이 독점적으로 공급되는 상품을 비싼 값에 사야 했다. 중상주의가 추구한 국가의 부는 결코 일반 국민의 부가 아니었다

# 어떤 물건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 없이, 그 물건의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고찰 없이, 단지 그 물건이 지금까지 값이 올랐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르리라는 기대로 그 물건을 사는 것을 보통 투기라고 한다.

# 매케이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개인도 집단행동에 가담하면서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다

# 투기가 장기적 미래소득에 대한 확신 없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이용해 일종의 모험적 매매를 해 일시적 차익만을 노리는 행위인 데 반해, 투자는 장기적이거나 규칙적인 미래소득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바탕으로 한 행위라는 것이다

#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자연과 세계가 기계적 법칙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 법칙의 진실은 결코 신만이 아실 일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인간 본성을 포함한 자연의 법칙을 파악함으로써 개인과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 부가가치: ‘산출액-중간투입액(원료비)=총부가가치’다. 여기에는 제조에 필요한 기구나 기계가 닳는 것, 즉 ‘고정자본소모’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것까지 고려하면 ‘산출액-중간투입액-고정자본소모=순부가가치’다. 국내총생산은 국내에서 발생한 총부가가치의 합을 말한다

# 이처럼 유기적으로 변하는 현실 경제 상황 속에서 특정 경제 사상도 힘을 얻었다 잃었다를 반복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역사에서 경제의 큰 흐름을 읽을수 있어야 한다

# 비릴리오의 이론에 특히 영감을 준 것은 중국의 고전 군사학서 『손자병법孫子兵法』(BC 5~6세기 추정)이었다. 손자의 유명한 경구 중 하나가 이것 아닌가.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법이다.” 비릴리오에 따르면, 인류 역사의 각종 전쟁·봉기·혁명은 이동의 자유와 속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투쟁하는 과정이며, 그래서 가속화와 함께 실질적인 공간과 권력이 재편되는 과정이다. 그에게 있어서 산업혁명 또한 폭발적인 가속화의 사건이었다.

#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차와 증기선 등으로 인한 운송 속도의 혁명과, 공장 기계 도입으로 인한 생산 속도의 혁명뿐만 아니라 분업으로 시간을 절약하는 데 따른 속도의 혁명까지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 이런 자유주의적 고전파 경제학은 산업혁명으로 성장한 신흥 산업자본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이 기존의 지배층인 귀족과 지주 계급을 압도하면서, 중상주의적 보호와 통제 정책이 무너지고 자유방임주의와 자유무역 정책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계급이 사회의 중요한 두 축을 형성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한다.

# "문명사회에서는 사회가 어느 정도 지위나 재산이 있는 사람들보다 일반인의 교육에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 전체 국민에게 기본 교육이 가능하게 해야 하고 장려해야 하며 나아가 의무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에서.

# 인상주의 미술과 산업혁명에 의한 근대 자본주의는 이처럼 기본적으로 끈끈한 관계였다는 것을 여기에서 짚고 가겠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미술사에서 혁명을 이룩했고, 아카데미 화가들의 진부한 그림들을 비판했고, 그런 그림들로 저택을 정성껏 장식한 부르주아지를 비웃었지만, 그들 역시 또 다른 부르주아 계급의 지지에 의해 성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주의 미술은 그 속도와 역동성의 면에서 산업혁명이 탄생시킨 자본주의 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 시장은 수급의 균형을 이루며 경제주체들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손’이 이루는 조화다.

# 지금 이 글에서 시민계급과 부르주아지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는데, 그 둘은 같은 뜻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는 ‘시민계급’이라고 할 때는 진보적인 혁명의 주체를 떠올리는 반면 ‘부르주아지’라고 하면 반혁명적인 기득권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부르주아지가 지닌 두 얼굴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는 프랑스에선 정치혁명을, 영국에선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낡은 신분 제도의 구속에 항거해 개인의 자유와 기본 인권, 민주주의를 최초로 폭넓게 전파했다.

# 19세기가 흐르면서 혁명의 주체였던 부르주아지는 점차 반혁명적 기득권층으로 변했다.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두 얼굴은 점점 화려해지는 그들의 초상화들에서, 그리고 혁명을 다루면서도 엘리트 취향으로 가득한 역사화들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 밀레가 비현실적인 감상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이 오늘날까지 힘을 갖는 이유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농민의 가난하고 고된 생활을 현실 그대로, 그러나 참담한 심정이나 울분 대신 농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연에 대한 서정, 종교적인 경건함을 담아서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는 이 작품에서 시적인 아름다움과 평화를 느낀다. 이것이 밀레가 사실주의 화가이면서도 낭만주의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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