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면 - 브레네 브라운 #2





# 취약성과 기쁨의 관계를 이해하면 답은 명백해진다. 취약해질까 봐 선수를 치는 것이다. 무방비상태에서 당하는 것이 싫어서 문자 그대로 불행해지는 연습을 하거나 자신이 만든 실망감 안에만 머무른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정말로 기쁜 순간에 머릿속을 비극적인 이미지로 가득 채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평생 동안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취약성을 밀어내려고 애쓰며 살아왔기에 불확실성·위험·기쁨의 감정 노출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자신의 경험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기쁨에 수반되는 취약성의 전율을 ‘감사하라’는 초대장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어떤 사람, 아름다움, 이어짐, 또는 눈앞의 순간이 얼마나 고마운지 인정한다.

# 행복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이다. 반면 기쁨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세상에 참여하는 방법이며 감사를 실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 슬픔과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기쁨과 빛에 관해 배우면서 나는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 지금껏 나는 이보다 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첫째, 기쁨은 순간( 대게는 평범한 순간)에 찾아오는 감정이다.

둘째, 지금 가진 것을 고마워하라.

셋째, 기쁨을 아깝게 흘려보내지 마라.
기쁨에 몸을 내맡기고 그 순간에 녹아들 때 회복탄력성은 커지고 희망이 자라난다.

#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은 내가 취약해지고 불완전해지고 나 자신에게 따뜻해질 용기를 키웠을 때 찾아왔습니다.’

# 완벽주의는 최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다르다. 완벽주의는 건전한 성취와 성장이 아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완벽한 외모를 갖춘다면 비난·비판·수치심의 고통을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완벽주의는 20톤짜리 보호막이다. 우리는 그 보호막이 우리를 보호해주리라 믿으면서 그것을 질질 끌고 다니지만, 사실은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한다.

완벽주의는 자기계발과 다르다. 완벽주의의 핵심은 남한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 완벽주의는 외부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완벽주의는 하나의 속임수다.
무엇보다 완벽주의는 성공의 열쇠가 아니다.

완벽주의는 수치심의 한 형태다. 완벽주의 떄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수치심 때문에도 힘들어한다.

완벽주의는 자기파괴적이고 중독성을 가지는 믿음 체계다. 완벽주의는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낸다면 수치심, 비판, 비난의 고통을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을 강화한다.

완벽주의가 자기파괴적인 이유는 세상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다.

완벽주의는 내적 동기가 아니라 지각과 관련이 깊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지각을 통제할 방법은 없다.

완벽주의에는 중독성이 있다. 수치심을 느끼거나 비판을 받거나 비난에 휩싸일 때, 그 원인을 자기 자신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어버린다. 우리는 완벽주의의 잘못된 논리에 의문을 품는 대신 외모와 행동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거듭한다.

완벽주의는 우리에게 수치심·비판·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수치스러워지고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

완벽주의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분명 기나긴 여정이 될 것이다. 출발점은 수치심 회복탄력성, 자기 자신에게 공감하기,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 소중히 여기는 것의 가치는 무엇인지 진실을 포착하고 삶의 불완전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에게 여유를 허용하고 자신의 불완전성을 아름답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더 친절하고 따뜻해져야 한다.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 완벽주의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이유는 속임수란 것이 원래 피곤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속임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연극과도 같다.

# 《무조건 행복할 것》은 그녀가 행복해지는 법에 관한 책과 논문들을 읽고 1년 동안 실행해본 기록이다. 완벽주의를 제어하는 법에 관해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요. ‘완벽이 좋은 것의 적이 되게 놔두지 말자.’ 철학자 볼테르의 말을 빌려온 거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20분간의 산책이 내가 좀처럼 하지 않는 7킬로미터 달리기보다 낫지요. 세상에 출간된 불완전한 책이 내 컴퓨터를 떠나지 못하는 완벽한 책보다 낫고요. 테이크아웃 중국음식으로 여는 디너파티가 내가 한 번도 마련하지 못한 근사한 저녁식사보다 낫잖아요.”

# “빠르고 지저분한 사람이 경주에서 이긴다.Quick and dirty wins the race.(영어 속담 ‘천천히 가는 사람이 경주에서 이긴다.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를 자기 나름대로 변형한 것이다 - 옮긴이)”

“완벽은 실행의 적이다.”

“괜찮은 것은 사실 엄청나게 좋은 것이다.”

# 완벽주의에서 해방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창의적인 일에 뛰어드는 것이다.- 니컬러스 윌튼

# 다른 분야들은 모두 딱 맞아떨어지더라도 예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은 인간이라는 존재와 꼭 닮아 있다. 살아 있는 것, 본성상 불완전하다는 것, 분류가 불가능한 느낌과 감정을 가진다는 것, 비이성적인 일을 하거나 엉뚱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

예술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

# ‘모든 것에는 빈틈이 있어요.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죠.There’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 레너드 코헨 <앤섬 ansthem>

# 취약성에 관한 감각을 스스로 마비시킨다. 취약성을 마비시키는 행위가 위험한 이유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감정만 없애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약성을 마비시키면 사랑·기쁨·소속·창의성·공감과 관련한 경험도 함께 무뎌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감정 한 가지만 골라서 마비시킬 수는 없다.

# 온 마음을 다하여 사는 사람들은 ‘나는 충분해’라는 의식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들이었다

# 나는 온 마음을 다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불안을 줄이기 위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그러자 그들은 불안을 줄이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며 언제 과부하가 되는가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포기할 때가 언제인지 확실하게 정해놓고 있었다.

# 비록 소수였지만 자신의 삶을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시키고 경계선을 설정하는 방법으로 불안의 근원을 제거한다고 답한 B집단의 사람들은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의 연속체 위에 있었다.

B집단 사람들에게 경계선과 한도를 정하는 방법을 물었더니 그들은 경계선이 자존감과 관련이 깊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여자들은 경계선을 설정하는 일이 한층 어렵다. 수치심 그렘린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간섭하기 때문이다.

# 나는 사랑과 소속감을 깊이 느끼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해서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차이점은 단 하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 결론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사랑과 소속감을 충만하게 느끼고 싶다면 자신이 사랑받고 어딘가에 소속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믿어야 한다.

# 소속의 욕구는 매우 원초적이어서 우리는 억지로 끼워 맞춰서라도 자신을 승인받고 소속감을 얻으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으로는 소속감을 온전히 대체하지 못하며, 오히려 소속감을 저해하기도 한다. 진정한 소속감은 우리의 진짜 모습, 불완전한 모습을 세상에 보여줄 때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소속감은 자신을 긍정하는 감정보다 커질 수 없다.

# 이어진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경계선을 설정하고,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과 줄다리기를 해서 이기느라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고,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과 더 단단히 이어지는 일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패러다임에서 ‘온 마음을 다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전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에 참여하고 싶다면 우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고 이어짐을 경험해야 한다고.

# 빛이 아름다운 것은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들은 용기·공감·이어짐이 만들어낸 작은 빛의 깜박거림을 하나로 모아서 고통, 곧 어둠 속에서 그것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볼 때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갑자기 투광조명을 비춰버릴 때 그 어둠은 사라지고 끊어진 느낌만 남는다.

# ‘유리창 깨고 관심 긁어모으기’란 사회적 경계선을 망치로 두드리듯 쾅 부수고 개인적인 정보를 노출해서 관심과 에너지를 손에 잡히는 대로 움켜쥐는 행동을 의미한다. 자극적인 언행으로 눈길을 끄는 일이 일상화된 연예계에서 이런 행동이 자주 발견된다.

# 심호흡과 유머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취약성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 간극의 시작은 이렇다.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실천가치(우리가 실제로 하는 행동과 사고, 실제로 느끼는 감정)들과 소망가치(우리가 하고 싶고, 생각하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들 사이의 틈이 바로 가치의 간극이다. 나는 이것을 ‘놓아버리기의 간극’이라고도 부른다.

# 무엇보다 우리 문화에서 중요하게 내세우는 가치들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간극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취약성을 끌어안고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 경력이 오래된 어느 현직 교사는 다음과 같은 댓글로 내 마음을 울렸다.

‘나에게 교육은 사랑이다. 교육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와 상상과 발견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수치심이 너무 커져서, 또는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아서 내가 나 자신을 잃기 시작하면 나는 더 이상 교육자로 있을 수가 없다. (…) 나는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돼버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게 된다.’

# 대담한 문화란 솔직하고 건설적이며 적극적인 피드백이 오가는 문화를 뜻한다. 조직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 피드백이 없으면 획기적인 변화도 없다.

# 사람들은 피드백에 목말라한다. 누구나 성장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임무는 성장과 참여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피드백을 주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 리더들이 진짜 배움과 비판적 사고와 변화를 바란다면 불편은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성장과 배움은 원래 불편한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성장과 학습이 이뤄질 테고 여러분은 당연히 불편을 느끼겠죠. 이곳에서는 불편한 게 정상이고 표준이라는 점을 아셨으면 합니다. 나 혼자만 불편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귀를 열어놓고 불편에 적응하세요.’

#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편안하다면 나는 아무것도 가르치고 있지 않은 겁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있는 겁니다. 여기는 불편한 자리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그게 정상적인 배움의 과정입니다.”

# 사람들에게 불편이 표준이고 앞으로 불편해질 것이고, 그게 왜 중요한 일인지를 단순하고 솔직하게 알려주자. 그런 과정만 거쳐도 불안과 두려움과 수치심은 줄어든다.

# 우리의 강점을 이해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강점과 한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바꾸고 싶은 점과 가장 잘하는 일을 함께 바라보면, 두 가지가 정도만 다를 뿐 핵심은 똑같은 행동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대개의 경우 우리는 자기 자신의 단점 또는 한계를 분석하는 동안 그 속에서 반짝이는 강점들을 발견한다.
강점시각을 취한다고 해서 자잘한 것에 집착하는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점시각에서 단점을 바라보면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응시하면서 내가 바꾸고 싶은 행동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강점시각은 문제 상황을 긍정적인 것으로 왜곡하거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도구가 아니다. 강점시각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의 강점들을 검토할 수 있게 해주며, 강점들을 활용해 그와 연관된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법도 제시해준다.

# 피드백을 주고, 피드백을 이끌어내는 일은 곧 배움과 성장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토대가 된다.

# 뭔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취약성이다. 그런 취약성을 끌어안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변명을 늘어놓게 되고, 질문을 피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 거짓말을 늘어놓게 된다. 어떤 관계에서든 거짓말은 치명타로 작용한다.

# “평생 영업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와 ‘제가 실수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솔직함과 개방성은 우리 삶의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의 열쇠가 됩니다.”

# ‘진정한 리더십이 드문 이유는 사람들이 리더십에 따르는 불편을 감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드물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높다. (…) 낯선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실패할 확률이 있는데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현재 상태에 도전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현재에 안주하려는 욕구를 거스르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그 불편을 인식할 때 당신은 리더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만약 리더로 있으면서도 불편하지 않다면 당신은 리더로서 모든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 세스 고딘 Seth Godin 《Tribes: We Need You to Lead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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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면 - 브레네 브라운 #1


# ‘마음가면을 벗고 취약성을 드러내는 순간,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취약성은 성패를 미리 알 수 없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가 모두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취약성이란 참여하는 것이다. 마음가면을 벗고 온몸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 사회복지학 학사과정,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순서대로 거치면서 내가 얻은 확실한 교훈이 하나 있다. 이어짐connection(요즘은 connection을 ‘연결’로도 많이 옮기지만 이 책에서는 ‘이어짐’으로 풀어 썼다. ‘이어진 느낌’은 ‘유대감’과 같은 뜻이다-옮긴이)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라는 것! 사람에게는 타인과 이어지려는 본능이 있다. 관계는 우리 삶에 목표와 의미를 부여한다. 타인과 이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고통받는다.

# 사람은 현재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것을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감정적인 경험과 관련해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이란 자신의 가치를 토대로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용기와 공감 능력을 지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아침에 눈뜰 때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든, 미처 못 해낸 일이 얼마나 많든 나를 긍정해주는 것이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 나는 불완전하고 취약한 존재야. 때로는 뭔가를 두려워하기도 하지. 그래도 나는 용감한 사람이야. 나는 사랑받고 어딘가에 소속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 부모로서 불완전했던 순간들은 오히려 선물이 될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고 다음번에 더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우리의 지상과제는 완벽한 부모라는 가면을 쓰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과 나중에 아이들이 용감하고 적극적인 어른으로 자라는 것은 다른 문제다.

# ‘우리가 무엇을 아는가’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려면 마음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자면 세상에 대담하게 뛰어들어야 한다. 기꺼이 취약해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여정의 첫걸음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에 도전하려 하는지, 목적지는 어디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 우리에게 더 큰 도움이 되는 행동은 ‘취약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문제의 패턴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예컨대 취약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나르시시즘을 바라보면 수치심에서 비롯된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보인다.

# ‘네가 부족해서 그래’ 문화에 대항하는 방법은 풍요롭게 사는 것이 아니다. ‘늘 뭔가 부족하다’의 반대말은 ‘풍요롭다’도 아니고 ‘무한정 많다’도 아니다. 부족함의 반대말은 ‘충분함’이다. 나는 충분함 대신 ‘온 마음을 다함Wholeheartedness’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이를 달성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핵심이 바로 취약해지기와 자아 존중하기다.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더라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 지금의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 취약성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취약하다는 것은 이른바 ‘어두운 감정’은 아니지만 마냥 가볍고 긍정적인 경험도 아니다. 취약성은 모든 감정과 느낌의 핵이다.

# 내가 10년간의 연구를 통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취약성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감정과 경험들의 요람이다. 취약성은 사랑, 소속감, 기쁨, 용기, 공감, 창의력의 원천이며 희망과 공감, 책임감과 진정성을 잉태한다. 삶의 목표를 더 분명히 하고 싶다면, 정신세계를 더 심오하고 의미 있게 만들고 싶다면 취약성에 그 답이 있다.

# 우리의 작품, 우리의 글, 우리의 사진, 우리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보장도 없고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취약해진다. 순간의 행복에 취하는 일은 또 어떤가? 행복한 순간은 덧없이 흘러가버린다는 사실을 우리도 안다. 재난을 부르고 싶지 않다면 너무 행복해하지 말라고 세상이 우리에게 충고한다. 순간의 행복에 취한다는 것은 짧지만 강렬한 취약성이다.

# 삶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의 영역을 되찾고 열정과 목표의식에 불을 붙이고 싶다면 자신의 취약성을 끌어안고 취약한 상태 그대로 세상에 참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삶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모든 걸 걸고 있나요? 남들의 취약성을 높이 평가하는 만큼 당신의 취약성도 소중히 여길 수 있나요?”

여기서 ‘예’라고 대답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측량 불가능한 용기다. 대담하게 뛰어드는 행동이다. 사실 대담하게 뛰어들기의 결과는 승리의 행진이 아닐 때가 많다. 하지만 대개는 격렬한 전투 끝의 피로감과 함께 조용한 자유가 찾아온다.

#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불확실성, 위험, 감정 노출을 선택적으로 피해갈 수가 없다. 삶 자체가 취약한 것이다

# 취약성을 최대한 피하려고 애쓰다 보면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 취약성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불확실하고 위험하고 감정이 노출되는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 취약해진다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정과 경험을 털어놓는 것이다. 취약성을 끌어안고 솔직해진다는 것은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으로 대개는 쌍방향으로 이뤄진다.

# 우리가 정상적으로 뭔가를 털어놓는 대상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줘도 괜찮을 정도의 관계를 쌓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는 취약성은 관계를 더 깊게 만들고, 신뢰를 쌓고, 진정 어린 참여를 이끌어낸다. 경계 없는 취약성은 관계를 끊고, 불신을 조장하고, 참여를 저조하게 만든다.

#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의 강인함을 높이 평가한다. 현대사회는 혼자 뭔가를 해내는 사람을 숭상한다. 하지만 취약성을 탐구하는 여행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취약성과 친해지려면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를 쉽게 비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존재방식을 연습하도록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 수치심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 수치심은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마치 그렘린들이 빛에 노출되기만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처럼, 언어와 이야기는 수치심에 환한 빛을 비춰서 수치심을 제거한다.

#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취약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거네요? 취약해지기 위해서는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하고요.”

# 당신이 어떤 상품을 디자인했거나 기사를 썼거나 예술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보자. 당신이 만든 뭔가를 공유한다는 것은 취약해지는 일이지만 세상에 참여하고 ‘온 마음을 다하며’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대담하게 뛰어들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신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당신의 가치를 당신의 창작물이나 작품에 대한 세상의 평가와 동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당신이 세상에 접근하는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 “혁신을 죽이는 비밀병기는 수치심입니다. 수치로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죠. 누군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말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상사에게 꼭 필요한 피드백을 주지 못하거나, 고객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모두 수치심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틀리면 어쩌나, 망신당하면 어쩌나, 위축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있는데, 바로 그 불안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조직이 전진하는 데 꼭 필요한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지금 난 속상해. 실망스럽고 큰 타격을 받은 것 같기도 하네. 하지만 나는 성공과 명성과 인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 나는 용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용감하게 행동했을 뿐이야. 수치심아, 그만 가보렴.”

# 마지막 원칙은 수치심에 관한 이야기를 회피하면 할수록 수치심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 죄책감은 수치심과 똑같이 강렬한 감정이지만 우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반면 수치심은 우리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끼친다. 나의 연구에서도 수치심은 자신이 변화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잠식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 존이라는 사람이 동료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데 그가 영업에서 판매를 성사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상사가 존에게 ‘루저’라고 했다고 가정해보자. 존은 그 상황을 수치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고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만약 존이 자신에게 “아, 이런, 이런. 난 루저구나. 난 패배자야.”라고 말한다면 그는 수치심을 느낀 것이다. 만약 존이 자신에게 “허 참, 저분이 자제력을 잃으셨네. 그래도 그렇지.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모욕을 느낀 것이다. 모욕은 매우 기분 나쁜 감정이며 일이나 가정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모욕을 느끼는 상황이 되풀이될 경우 우리는 그 메시지를 내면화하기 시작하고 모욕감은 서서히 수치심으로 변해간다. 그래도 모욕은 수치심보다 낫다. 존은 ‘루저’라는 상사의 발언을 내면화하지 않고 자신에게 “저건 저 사람의 문제야.”라는 말을 들려줬다.

# 수치심 회복탄력성은 수치심에서 공감으로 옮겨가는 힘이다. 공감은 수치심을 치료하는 약과 같다.

# 자기 자신을 향한 공감은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가 수치심의 한가운데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서 도움을 청하고 공감을 경험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 “나의 과거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미래의 모습이 나를 규정한다.” - 칼 융

# 수치심은 우리가 그것을 비밀로 간직할 때 더욱 왕성하게 활동한다.

# 일찍부터 비밀 유지의 효과에 관해 연구해온 펜베이커 박사는 글쓰기의 치유력을 중시한다. 그는 《치유하는 글쓰기Writing to Heal》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연구자들은 치유의 수단으로서 글쓰기가 지닌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트라우마가 된 경험에 관해 3~4일 연속으로 하루 15분에서 20분 동안 글을 쓰면 육체적·정신적 건강상태에 측정 가능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감정을 담아내는 글쓰기는 수면, 업무효율, 대인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 여자다움에 관한 사회적 규범들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규범들은 환원주의적이고 우리에게서 진정한 삶을 앗아간다. 그 규범들을 강제하는 통로가 바로 수치심이다. 수치심 회복탄력성이 취약성을 끌어안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수치심 회복이란 중용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중용의 길을 택하면 우리는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 우리가 대담하게 세상에 뛰어들고 서로에게 취약해진다면 자존감이 힘을 발휘해 우리 모두를 한층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 ‘네가 부족해서 그래’의 반대말은 ‘나는 충분해’다. 무언가 부족한 느낌의 속성은 곧 수치심·비교·놓아버리기다. 그렇다면 나는 충분하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갑옷을 벗는 방법이 아닐까? 충분하다는 말에는 자존·경계·참여의 의미가 포함된다. 연구 참가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찾아낸 모든 갑옷 벗기 전략의 핵심에는 충분이라는 의미가 존재한다.

# 아무리 운이 좋더라도 의구심과 두려움과 주저하는 마음 없이 취약성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불확실성과 위험과 감정 노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갑옷을 입고 살다가 어떤 계기로 그것을 벗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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