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브랜드 - 박찬용



# 제품엔 기술이 중요하지만 판매와 이미지메이킹엔 브랜드 스토리 자체가 중요

# 브랜드가 만들어 내는 모든 이야기의 목적은 똑같다. 브랜드를 좋아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당신도 그런 일을 한다. 잠재적 연인을 소개받으러 나간 자리에서나 직장 면접에 나가서 상대방에게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당신이라는 브랜드의 브랜드 스토리다. 그 이야기의 목적도 같다. 당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

# 개인의 홈페이지나 다름없는 블로그나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며 노동자 겸 자본가가 된 개인은 브랜드 매니저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까지 생겼다. 당신의 인스타그램 사진부터가 당신이라는 브랜드 메시지다

#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대형 종교가 몇 없는 것처럼 우리가 고를 수 있는 IT 생태계도 별로 없다. 요즘 나오는 소비자용 기술은 삶의 요령을 바꿀 수는 있어도 삶의 원리를 바꿔 주지는 못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평생 동안 새로운 디바이스라는 프리즈비를 향해 달리는 개처럼 살 것 같아 두려워진다.

#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발상에서 온다. 새로운 발상은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기술을 통해 표현된다. 혁신은 셀카봉처럼 사람과 세계를 보는 시각에서 태어난다. 루미네이드는 일종의 답이다. 문명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 덜 개발된 지역을 보고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서 저 사람들의 상황을 낫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의 대답.

# 어떤 사람의 삶은 어릴 때 나타난 패턴의 확장과 반복인 경우가 많다.

# 사람들은 <캐리비안의 해적>의 오리지널리티나 몰스킨의 뻔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물건 자체의 가치와 상징에 집중한다.

# 몰스킨이 성공한 이유 역시 사람들이 원하던 뭔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몰스킨을 관통하는 질문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 이렇게. ‘몰스킨이 사람들에게 준 것이 뭘까?’

# 세상에 그런 공책은 없다. 몰스킨은 세상에 없는 기분을 파는 데 성공했다.

# 몰스킨 공책의 3요소를 알려 주었다. 뛰어난 디자인과 품질, 영감을 부르는 이야기, 애호가 집단. 이 셋은 강한 선순환을 이룬다. 디자인과 품질과 낭만적인 이야기가 묶인 몰스킨 공책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 결과적으로 몰스킨은 일종의 취향 공동체가 되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 현재의 인터내셔널 브랜드는 일률적으로 팬 문화 기반의 플랫폼 비즈니스 형태로 진화한다. 생산자 입장에서 팬은 중복 구매자 겸 자발적 광고판이다. 팬들은 물건을 사고, 그걸로 뭔가를 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껴서, 그 즐거움을 남에게 알린다

# 몰스킨 이야기는 브랜드와 문화적 가치에 대한 것이지 트레이드마크가 아닙니다.

# 내 몸에 때가 붙어 있었다는 불쾌함과 이제는 더이상 내 몸에 때가 없다는 쾌감의 합은 단 것과 짠 것을 함께 먹은 것처럼 강렬하다.

#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은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에서 “가장 좋은 디자인은 설명이 없는 디자인”이라고 했다. 애플은 이런 디자인의 명수다. 이 경우에는 설명하지 않고도 전화기 아래에 있는 부품을 꺼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한 것이다.

# 새로우려면 늘 냉정해야 한다. 애플은 돌아본 적이 없었다. 조너선 아이브가 사랑한 흰색 플라스틱은 이제 애플의 물건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이제 흰색 플라스틱 대신 산화 피막 알루미늄을 사랑한다.

# 애플은 독일의 바우하우스풍 디자인에 캘리포니아풍의 새하얀 마요네즈를 바른 것 같았다. 무인양품은 그걸 일본식으로 노릇하게 그을린 후 소금을 친 것 같았다.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정체성이다. 맥락을 깔아 두고 하나의 주제를 고수하면 정체성이 생긴다. 그다음부터는 하던 걸 반복하면 된다. 샤오미는 벌써 그걸 하고 있다.

# 디자인 등 눈에 보이는 것만 좇다 보면 진짜 경쟁력을 잊는다.

# “우아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우거나 도망가야 한다”

살아남는 것과 우아한 것, 만드는 것과 알리는 것, 보수적인 것과 대담한 것, 도망가는 것과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스위스 시계 업계는 스위스라는 특이한 나라가 만들어 낸 아주 특이한 물건이다.

# 멋진 말을 하기는 쉽다. 어려운 건 멋진 말을 했을 때 남들이 동조하는 위치까지 가는 것, 멋진 말을 했을 때 ‘그래, 저 사람은 저런 말을 할 만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멋지게 사는 것, 멋진 개념을 가진 물건을 만들어서 시장에 파는 것이다.

# 콤파뇨 씨의 말은 냉정하게 봤을 때 옷 많이 팔려고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생산과 소비는 삶에서 빼기 힘든 일부가 되었다. 기왕 뭔가 사고 팔 거라면 깊이 생각해서 물건을 만들고 멋진 말과 함께 파는 쪽에 좀 더 호감이 갈 것 같다.

# 위블로의 성공 비결은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이들의 성공전략은 요즘 사치품의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간결한 콘셉트와 화려한 디테일, 적절한 마케팅과 탁월한 순발력. 그 방법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위블로 같은 브랜드가 많아야 할 텐데 지금 스위스발 고급 시계 중에서 새로운 이름과 정체성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브랜드는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위블로다.

# 21세기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패션에 미치는 영향도 있을까요?

높은 땅값이 물리적인 매장을 없앨 거고, 낮은 경제성장률이 브랜드를 침체시킬 것 같아요.

# 사람의 행복은 목표에 이르는 것에 있지 않다. 행복은 과정에 있다. (중략) 목표에 도달했다고 믿는 기업은 순식간에 정체에 빠지고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다행히도 이케아는 그럴 일이 없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놀라운 미래를 위해!”

사장님 훈화 말씀과 <시크릿> 같은 자기계발서가 섞인 듯한 이 글의 제목은 ‘어느 가구 판매상의 유언’이다

# 감성적인 디자인과 첨단 기계인 컴퓨터라는 요소를 함께 만족시킨 애플이 대표적인 예다. 훌륭한 브랜드는 스스로 모순적인 과제를 만들고 그 모순을 충족시키며 경쟁자가 따라갈 수 없는 자리에 오른다. 이케아도 저렴한 가격과 프리미엄 이미지라는 두 숙제를 동시에 해낸다.

# 교주나 리더가 되려면 몇 가지 자질이 필요하다. 굉장한 능력이나 카리스마는 기본이다. 거기에 더해 진짜 강력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야기는 본질이 아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능력과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 리더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가진 본질적인 모순을 꿰매거나 숨길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고양시키고 양을 치듯 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가 그리는 세상을 묘사하고, 그 이야기를 퍼뜨리며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의 모양을 빚어 나갈 수 있다.

# 이케아를 비롯해 기존 시장을 붕괴시키고 1위가 된 브랜드는 모두 자신을 정당화하는 신화를 갖고 있다. 애플, 구글, 에어비앤비, 나이키, 롤렉스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비전을 따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거나 물건을 산 소비자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이케아는 그 이야기를 가장 잘 활용하는 브랜드다.

이야기는 성공의 포장지에 불과하다. 브랜드의 이야기와 철학이 중요하지만 그게 실물세계에서의 비즈니스보다 중요하다고 과대평가될 수는 없다. 리더에게 실력과 이야기 능력이 동시에 있어야 하듯, 브랜드 스토리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업 자체에 확실한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이케아는 실력 면에서도 굉장히 능숙한 동시에 창의적이다.

# 앤더스 달빅은 회고록에서 이 말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했다. “고객은 돈보다 시간이 많다.”

# 소비자도 조립할 수 있을 정도로 조립법이 간단한 설계 구조를 구현했다는 게 이케아의 첫 번째 천재성이다. 가격이 낮으면 자사 물건이 잘 팔리니까 스스로에게 좋은 건데, 그걸 더 나은 세상에 일조한다거나 민주주의적이라고 하며 의미를 부풀리는 게 두 번째 천재성이다.

# 장기이식이나 피부이식처럼 유럽 브랜드의 이미지 이식은 아주 흔한 일이다. 말만 되면 어떤 이미지든 끌어올 수 있는 게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마술적인 신비다.

# <모노클>처럼 독자의 질과 니치 마케팅으로 승부한다면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돈이 많이 드는 최신기술의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압도적인 분량의 매스 데이터와 그를 해석하는 AI 알고리즘 기술은 첨단기술이므로 운용할 때 돈이 많이 든다. 얼마가 들지 계산이 되지도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를 이용한 마케팅과 콘텐츠 유통 방법도 마찬가지다. 증명된 수익 모델이 없으므로 신약 개발 실험처럼 계속 변인을 달리하면서 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 큰 회사가 아니라면 이런 쪽에 실험적인 사업을 할 예산이 많지 않다. <모노클>은 안정된 수익 모델을 구축한 덕에 단위를 가늠할 수 없는 금전적 지출을 피할 수 있었다.

철지난 플랫폼이 생존하는 방법 중 지금까지 검증된 건 하나뿐이다. 사치품화다. LP와 기계식 시계와 만년필과 고서 시장의 공통점 역시 <모노클>의 성공 비결과 같다.

# 규모로는 작지만 쓰는 돈이 많고 충성도가 높은 고객층을 확보한다. 이 두 비결 덕분에 모노클은 종이라는 지난 시대의 정보 유통 플랫폼으로도 살아남았다.

# 시대의 실루엣을 만드는 건 대단한 재능이다. 그 실루엣이 어디서 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그 실루엣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실루엣을 비롯한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드는 사람은 그 사회의 주류 출신이 아닌 경우가 많다. 새로운 건 변방에서 온다. 변방에서 주류를 관찰한 자들이 운 좋게 주류 변두리에서 자리를 잡으면 그 변방의 시선이 갑자기 주류 한가운데로 들어가며 기존의 세계를 급격히 바꾼다.

# 어제 변방에 있던 자들의 통찰과 야심이 오늘의 시대정신이 된다.

# 베트멍도 우선은 거기서부터 왔다. 개념을 따오는 시선과 실물을 만드는 능력으로 성공했다. 시대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기로는 아이콘이 된 후에 온다. 무엇을 더 할 것인가?

아이콘이 되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 아이콘의 신화적인 이미지를 유지한다. 이자를 받는 전략이다. 아니면 신화적인 이미지를 밑천 삼아 더 큰 뭔가를 벌인다. 공격적인 투자 전략이다. 아이콘은 뭘 해도 상관없다.

# 그 의견 뒤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패션의 시대가 가고 한번 웃기고 마는 게 전부인 패션의 시대가 되다니’라는 한탄이 묻어 있었다. 이 견해와 한탄과 베트멍의 매출과 유명세를 따라가다 보면 중요한 질문에 닿는다. 지금 세상에서 비싼 옷의 의미는 뭘까?

# 반면 최신형 사치품은 그런 식의 진입장벽을 최대한 낮췄다. 자동차는 운전하기 쉽고 시계는 왜 비싼지 바로 알 수 있다. 배경지식이 필요한 사치품은 이제 사치품계의 주류가 아니다. 주류는 낮은 지적 진입장벽, 눈에 확 띄는 특징, 높은 자극성, 편리한 사용성이다. 장벽은 높은 가격과 최소한의 트렌드 정보뿐이다. 즉 돈이 있고 요즘 트렌드를 알면 상당 부분 된다. 베트멍은 그런 시대를 읽은 뎀나 즈바살리아의 대답이다.

[에필로그]

# 기업이 좀 더 큰 개념인 것 같아요. 기업 안에 브랜드가 있죠. 기업은 운영과 이윤을 내는 구조를 만들고, 브랜드는 기업 안에서 어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대중과 소통하는 가상의 이미지를 만드는, 영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 제품이나 서비스의 소울이라 할 요소를 뭉쳐서 브랜드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 어찌 보면 사람을 하나 만드는 거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기업은 사람의 인격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고, 시스템 안에 어떤 영혼을 갖춘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 주는 게 브랜드라고 봐요.

기업도 법적으로는 법인(法人)으로 하나의 인격처럼 취급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기업 법인의 캐릭터가 브랜드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볼 수도 있죠.

# 소수가 어딘가를 개발시키고, 그 혜택을 입으면서 자신의 뜻을 더 넓히는 선순환 구조가 좋은 도시의 기본 구조 같아요. 그 선순환이 끊기지 않으면 도시가 계속 발전하죠. 대신

그 혜택이 엄한 사람에게 가면 결국 트렌드를 따라가 버리는 도시가 되더라고요. 지금의 서울은 후자라고 할 수 있죠.

# 캐릭터를 이해하고 구현하려면 오히려 사람을 줄이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달까요. 대신 엘리트 집단으로 구성된 팀이라는 느낌을 받았고요.

# 큰 기업이 작은 기업처럼 느껴져야 결국 이 시대에서 성공할 수 있어요.

내가 내 생활 안에서 이 브랜드와 친밀하게 소통하는 것처럼 느껴야 하고, 그렇게 느껴지려면 작은 단위로 브랜드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는 그 뒤 배경이 굉장히 크다 해도요. 삼성과 애플의 차이가 그것 같기도 해요. 삼성은 늘 기업이라고 느껴지는데 애플은 나와 함께 있는 하나의 브랜드라고 느껴지죠. 그 부분에서 삼성과 애플이 비교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이 브랜드를 어떻게 가꿔야 이게 성공할 수 있다’라는 비전을 자기 선에서 직원에게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이끄는 브랜드가 대체로 매거진 <B>에서 다루는 브랜드의 공통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잡지를 만들다 보면 작은 브랜드의 이상적인 규모 자체가 쟁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매스 미디어가 만든 방향대로 사람들이 끌려 갔는데, SNS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매스 미디어가 투영시켜 준 이미지 대신) 오히려 사람들이 브랜드를 선택한 거예요. 종교, 국가, 정치인에 나를 투영하지 않고 내가 소비하는 브랜드에 나를 투영하는 거죠.

# 고급 시계라면 고고한 브랜드 방향을 유지하며 일할 것 같지만 사실 귀금속이라는 고가 사치품이야말로 인간의 인식 위에서만 소비가 가능한 물건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느 업계 못지 않게 소비자 의식 연구를 많이 하는 것 같고요.

연구가 필요하겠네요. 사치품의 경우 더더욱.

# 요즘 그런 이야기도 하잖아요. 애플을 쓰는 사람이 말하자면 국가처럼 하나의 사회적 단위가 되어 버렸다고요. 특정 브랜드 사용자를 커뮤니티로 규정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어려웠을 일인데 SNS를 통해 그게 가능해진 것 같아요.

# 운동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차를 마시는 등의 활동으로 나를 표현했어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운동이나 대인관계나 식사처럼 ‘소비’ 자체로도 자아를 발견한다고도 생각해요. ‘소비로 자아를 표현한다’는 일에 충분히 익숙해진 시대가 온 것 같아요.

# 지금 잘 되고 있는 브랜드든, 지금 떠오르는 브랜드든, 모두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방향이나 아름다움이 응축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브랜드를 경험한다면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이나 예측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경제적 합리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이 시대의 감을 내가 익히고, 그걸 통해 내가 버릴 것과 얻을 것을 판단하기도 하고요.

# 만약 자신이 브랜드를 만들려는 사람이라면 그 과정에서 분명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각광받는 브랜드와 떠오르는 브랜드를 의도적으로 봐요. 개중에는 뭔가 뜨면 그걸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죠. 저는 그런 감정도 딱히 가질 필요가 있나 싶어요.

# 브랜드 서사의 구조랄지, 브랜드가 이야기를 쓰는 방식이랄지, 브랜드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더 빛나게 하거나 자신의 머쓱한 부분을 가리는 요령이랄지.

# 세상은 흑백이 아니며 노을의 콘트라스트에는 경계선이 없다. 거의 모든 물건과 재화는 사치품과 필수품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 크게 보면 이는 내가 누구인지 표현하는 단체가 어디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래 그 사회의 권력은 그 사회 구성원이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조직이나 개인이 누군인지에 달려 있다.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원래 인간의 자아 규정 기관은 종교나 국가였다.

# 국가와 종교는 개인과 정체성이 포함된 패키지 거래를 제안한다. 단체 구성원의 재산과 시간을 점유하고 각자가 만들어 둔 정체성을 강요하는 대신 ‘그러니까 너는 무엇이다’라고 할 만한 정체성과 일련의 혜택을 준다. 국가주의가 한창이던 시절의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중세 교회도 교육을 포함한 여러 가지 사회안전망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 종교나 국가의 제안을 거절하기란 힘들었지만 요즘은 조금씩 빈틈이 생기는 중이다.

# 이런 정체성 싸움도 1992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국가 운영체제 개념으로의 사회주의가 침몰하며 하나마나한 것이 되었다. 이제 인간 경제개념의 운영체제는 자본주의뿐이다.

# 즉 요즘의 브랜드는 정체성 세부 조절이 가능한 시대에 사람들이 구입 가능한 정체성 배지다. 종교와 국가가 정체성을 주던 지루한 시대에 비하면 기업이 판매하는 정체성을 구입하는 시대의 사람들은 훨씬 자세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꾸밀 수 있다.

# 현대 사회의 모든 브랜드는 결국 상징을 만들고 애호가를 모이게 한 후 그 애호가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점에서 종교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브랜드의 상징적 요소와 아무 상관없이 합리적 필요성에 따라 물건을 사서 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도 없음도 메시지가 될 수는 있다. 롤러코스터에서의 무표정이 하나의 메시지이듯, 그런 사람 역시 ‘나는 브랜드라는 정체성 놀음에는 별 관심이 없소.’라는 시각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이다.

21세기가 무르익으며 국가별 무역과 통신망과 항공교통망이 발달할수록 대도시에서 종교와 국가의 기능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반대로 국제적 영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의 기능과 위력은 점점 세질 것이다. 기업 활동의 가장 형이상학적이며 심리학적, 미학적인 부분인 브랜딩 역시 더욱 매끄러워질 것이다. 앞으로의 브랜딩은 점차 교묘해지고 다정해지며 부드럽지만 강력해질 것이다. 그렇게 치면 브랜드 활동은 기업이라는 요즘 세상의 주체가 어떤 전략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문헌학적 재료가 될 수도 있다. 매년의 이케아 카탈로그에 늘 해석의 여지가 담긴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브랜드를 통해 현대 사회를 읽을 수 있다. 아니면 브랜드의 꾐에 속아 제한된 인생의 한정된 자원을 소진시키며 살아갈 수도 있다. 소비자로서 우리가 가진 미래를 어떻게 잘 살아갈지는 궁극적으로 개별 소비자의 몫이다. 모두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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